[워치라운지 이야기]우리나라에는 왜 시계 아이콘이 없을까?

워치라운지
202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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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와 사람, 아이콘의 탄생

아시아권에서 롤렉스 익스플로러를 왜 구매했냐고 물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기무라 타쿠야입니다. 그는 여러 드라마에서 익스플로러를 착용했고, 이 시계는 자연스럽게 그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단순히 작품 속에서만 착용한 것이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도 오랫동안 익스플로러를 차면서 ‘익스플로러 하면 기무라 타쿠야’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죠.

이처럼 일본에서는 특정한 사람이 특정 브랜드 혹은 특정 모델과 강하게 연결될 때, 그것이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아이콘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PPL이 적은 일본, PPL이 중심인 한국

한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방송과 연예계의 PPL(간접광고) 문화입니다. 일본에서는 PPL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방송이 끝난 후 광고 시간이 따로 있고, 광고주의 협찬을 알리는 방식도 명확합니다. 일본 드라마를 좀 보신 분들이라면 아래의 멘트가 친숙할 것입니다. 


“코노 방구미와 고란노 스폰사노 테이쿄 데 오쿠리시마시타(この番組はご覧のスポンサーの提供でお送りしました)”

이 방송은 다음 스폰서의 제공으로 보내드립니다


일본은 프로그램 안에서 제품을 자연스럽게 녹여 넣는 PPL이 아니라, 광고 시간에 확실하게 브랜드를 드러내는 전통적인 광고 방식을 선호합니다. 즉, 일본은 광고를 드라마 안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보다, 광고와 작품을 명확히 구분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 이유는 조금은 느슨한 일본의 방송법과 시청자 문화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의 사실성을 중요하게 여기고, 작품성이 광고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청자들도 "드라마는 드라마고, 광고는 광고다" 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래서 한국처럼 PPL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이 발달하지 않은 것이죠. 여전히 일본의 TV광고는 여전히 하나의 작품처럼 만들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PPL이 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부자연스러운 경우도 많죠. 뜬금없이 치킨을 먹고 싶다면서 특정 치킨을 시킨다든지, 맛에 대한 평가를 한다든지 등 몰입을 깨는 경우도 많죠. 또 우리나라의 법적 규제 때문에 상표를 가린다거나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에 특정 배우가 특정 시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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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시계’ 얼마에요?

한창 도깨비란 드라마가 유행할 때 한국의 태그호이어 수입사는 공유에게 태그호이어 까레라를 협찬했습니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유 시계’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당시 워치라운지에게도 '태그호이어 까레라' 라는 문의보다 '공유 시계' 라는 문의가 훨씬 많았습니다. 실제로 검색량이 급증하고, 판매도 증가했겠지만, 지금 ‘공유 시계’ 하면 까레라를 떠올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건 공유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 연예인들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수많은 배우와 가수들이 협찬을 통해 특정 브랜드의 시계를 착용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연관성은 희미해집니다. 특정 배우가 이 드라마에서는 이 시계를 차고, 저 드라마에서는 저 시계를 차고, 이제 대중도 그것이 단순한 PPL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이 연예인은 정말로 이 시계를 소장하고 애정한다’는 이미지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결국, 특정 인물이 특정 브랜드의 대표 얼굴이 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연예인의 취향을 보여주기 어려운 환경

1b595f73aeabc.jpg결국 한국에서는 연예인이 본인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적습니다. 방송에서는 협찬 제품을 우선적으로 착용해야 하고, 예능이나 공식 석상에서도 브랜드와의 계약 관계가 있기 때문에 특정 제품만 착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사람이 애정하는 시계’라는 개념이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반면 일본에서는 배우가 본인의 시계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고, 그 모습이 꾸준히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특정 모델이 배우의 이미지와 결합됩니다. 기무라 타쿠야의 익스플로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는 드라마, 예능, 사적인 자리에서도 꾸준히 익스플로러를 착용했고, 그 결과 ‘기무라 타쿠야=익스플로러’라는 공식이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옆의 사진처럼 2007년 방한했을때에도 익스플로러를 차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배우와 제작자가 어떤 시계를 착용할 지 컨셉을 고려하여 착용하기도 합니다. 가난한 역할로 나오면서 롤렉스를 차고 나오면 이상하겠죠. 기무라 타쿠야는 BG 신변경호인이라는 드라마에서 보디가드 역할을 맡았는데 당시 착용한 시계는 오메가 아쿠아테라였습니다. 007의 제임스본드와 비슷한 느낌으로 아쿠아테라를 골랐다고 합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착용한 옷이나 액세서리 등이 "私物ですか?(개인소장품인가요?)" 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개인 소장품을 방송에 차고 나오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가장 편한 방송은 아마 '라디오스타'가 아닐까요. 라디오스타에 특히 개인 소장품을 차고 나오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시계를 비추며 시계에 대한 자신의 스토리를 듣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시계 아이콘이 나올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기무라 타쿠야처럼 시계 아이콘이 나올 수 있을까요? 현재의 환경에서는 어려워보입니다. 이것은 한국 연예인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방송법상 한계로 인해 개인적인 취향을 드러내기가 어려운 구조적 문제 때문입니다.

사실 한국 연예인들도 본인만의 취향이 있을 것입니다. 좋아하는 시계 브랜드가 있고, 애정을 갖고 꾸준히 착용하는 모델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방송 규정상 협찬 제품 외의 브랜드를 노출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습니다. 이 때문에 연예인들이 실제로 어떤 시계를 좋아하는지, 어떤 브랜드를 자주 착용하는지를 대중이 자연스럽게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제약은 시계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도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방송에서 브랜드명을 직접 언급하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를 ‘너튜브’, 푸마를 ‘파마’라고 부르는 식의 인위적인 표현들이 일반화되어 있죠. 심지어 일반인들이 유튜브에서 상표명을 언급할 때 조심하기도 합니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이미 어떤 브랜드를 말하는지 알고 있지만, 법적 규제로 인해 직접적인 언급이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특정 연예인이 특정 시계를 오랫동안 애용하는 모습을 대중이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줄어듭니다. 브랜드가 협찬을 하지 않는 이상, 방송에서 특정 시계를 반복적으로 노출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특정 인물이 특정 브랜드와 강하게 연결되는 ‘아이콘’이 탄생하기 어려운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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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이 중심이 된 한국 연예계에서는 특정 인물이 특정 브랜드의 아이콘이 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단순히 시계를 많이 착용한다고 해서 아이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 사람이 차는 시계=그 사람’ 이라는 인식이 생겨야 합니다. 기무라 타쿠야처럼 말이죠. (글을 쓰기 전에 생각나지 않던 인물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바로 경규옹, 이경규 님입니다. 이경규 님의 모나코 사랑, 태그호이어에 대한 로열티는 수많은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은 자연스럽게 이경규의 태그호이어 사랑이 주제가 되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언젠가는 연예인들이 협찬과 관계없이 자신의 취향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브랜드명을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고, 연예인들이 본인이 애정하는 시계를 꾸준히 착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한국에서도 ‘시계 아이콘’이 탄생할 가능성이 생길 것입니다. 시계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취향이 문화가 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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