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워런티여도 거절할 수 있다?
“시계 업계의 월드워런티”에 대해서 “제조사-수입사 간 계약에 따라 거절할 수 있다” 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디스트리뷰터, 총판, 수입사, 뭐가 됐든)
이 주장은 형식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다른 업계에서는 그렇게 운영되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계약에 따라 보증이 제한되는 ‘정상적인’ 사례들
대표적으로 패션, 전자제품, 음향기기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은 해외 구매한 제품에 대해서는 A/S불가 혹은 조건부 유상 가능.
월드워런티를 제조사가 내세우는 브랜드도 국내 유통사가 서비스 거절하는 경우 많음.
이런 정책은 제조사와 수입사 간 계약에 따라 달라짐.
즉, “계약서에 따라 월드워런티 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전혀 틀린 말은 아니고 업계에 따라 정당하게 적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혹은 애초에 '제한된 월드워런티'로 명시되어 있는 경우
가전제품에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소니TV를 미국에서 직구해서 쓰고 있는데 미국 전자제품은 110V를 씁니다. 220V만 쓰는 한국에서 전압기준, 주파수가 다른 외국 제품까지 워런티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겠죠. 한국 서비스센터에서 외국 제품에 사용할 수 있는 부품을 준비하고 테크니션을 항상 상주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런 경우 제품에 소개된 보증 규정에는 이런 내용이 당연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월드워런티도 수입사가 거부할 수 있다
월드워런티라고 해도, 계약 구조상 유통사가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실제로 제조사-수입사 간 계약서에 “비공식 유통 제품에 대한 책임은 없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면, 수입사 입장에서 정당한 거절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제품에는 “월드워런티” 이란 문구가 포함돼 있고,
소비자는 브랜드 웹사이트나 매뉴얼, 보증서를 통해 동일한 서비스를 기대하고 있는데,
정작 서비스는 국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면?
이런 차이가 있다면, 그건 명확히 고지돼야 하고, 제품 또는 판매처에서 표기해야 합니다. (전자제품이나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병행수입 제품 AS불가’ 같은 표기들)
만약 그걸 고지하지 않고 소비자가 오인하도록 방치했다면, 이는 소비자 보호법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조사와 수입사 간의 계약 내용을 당연히 외부자인 소비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비자는 보증 규정에 대해서 웹사이트나 매뉴얼 등을 보고 확인을 합니다. 그런데 별도로 “한국에서는 별도의 규정이 적용된다" 는 언급이 있지 않으면 소비자는 기재된 월드워런티를 당연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월드워런티니까 서비스를 제공 해야 된다, 말아야 된다” 가 아니라 “소비자가 알 수 있었냐 없었냐” 입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시계 브랜드는?
대부분의 시계 브랜드는 "월드워런티" 를 제품과 함께 제공합니다. 이건 수입사가 아닌 제조사(브랜드 본사)가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보증 서비스입니다.
예를 들어 오메가, 태그호이어 등은 보증서 혹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든 공식 서비스 센터에서 동일한 워런티 제공” 을 명시합니다.
한국에서도 이 브랜드들의 서비스 센터는 보통 브랜드 본사에서 직접 지정한 공식 센터이며,
수입사가 임의로 운영하는 독립 서비스 센터가 아닙니다.
즉, "제조사가 우리 브랜드의 서비스 센터는 여기에 있으니 여기서 월드워런티를 받으면 된다"
고 제조사가 직접 알려주는 것입니다.
즉, "제조사가 지정한 서비스 센터에서 서비스 받으라" 는 것은 제조사가 제품을 팔면서 제품에 붙어있는 권리이지,
수입사가 제품 외에 별도로 판매하는 권리가 아닙니다.
월드워런티의 본질은 ‘제조사의 약속’
그렇다면 제조사는 왜 월드워런티를 제공할까요?
간단합니다. 자신의 제품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브랜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건 단순한 A/S 범위가 아니라, 브랜드가 자사의 철학과 품질을 세계에 공통적으로 전달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따라서 수입사가 자신이 판매한 제품이 아니란 이유로 워런티를 거부하는 것은
월드워런티의 본질적 취지와 어긋나는 일 입니다.
대부분의 럭셔리 시계 브랜드는 월드워런티를 제공한다.
맨 위에서 언급했듯이 월드워런티여도 수입사가 계약상 거부할 수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실제로 이런 회사는 다른 업종에는 많습니다.
음향기기, 전자제품, 기타 등등. 하지만 모든 수입사는 그 내용을 명시합니다.
시계 브랜드는? 국내수입사에서 명시적으로 안 된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브랜드는 거의 없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럭셔리 시계 브랜드가 "월드워런티"를 적어놓고 "한국은 예외" 라고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브랜드 파워가 있는 제조사가 자신들이 정한 보증 정책을 각국 수입사에게 요구합니다. 그게 브랜드 이미지와 소비자 신뢰를 유지하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본사가 진짜 허용했을까?
그런데 브랜드 웹사이트에는 월드워런티가 가능하다고 써있고, 한국 수입사만 혼자 ‘직구제품, 병행제품은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고 해서,
브랜드 본사에서 그걸 진짜 허용했을까? 확인하는 법은 쉽습니다. 스위스 본사 CS에 메일 한 줄 써서 보내면 끝입니다.
그러면 대부분 2~3일 내로 회신이 오며 조치됩니다.
“This product was purchased overseas. Can I receive warranty service in Korea?”
문제는…
영어로 메일 쓰기 귀찮고, 어디로 보낼지도 찾아야되고 번거로우니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비스 센터는 ‘기본적으로 안 해주는 것’을 전제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고객이 뭔가 잘 알고 따지기 시작하면, 또 잘 해줍니다. 그게 현실이고 관행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소비자들도 똑똑해져서 브랜드에서도 별 소리 없이 다 해줍니다.
그것은 소비자들이 똑똑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못 받던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를 받은 것 뿐입니다.
오래된 익숙함이 당연한 것으로 착각
한국은 삼면이 바다고, 유일한 언어를 쓰며 해외 직구가 자유로워진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구 제품, 병행제품은 A/S 안 돼”가 당연한 인식으로 굳어져 소비자들조차 그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월드워런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개별 국가 단위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세계를 하나의 단위로 이해해야 합니다.
조금 글로벌하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유럽 사람이라고 생각해보겠습니다.
프랑스 수입유통사가 “영국에서 산 건 A/S 안 해줘요”라고 하면…제조사 본사에서 그걸 그냥 둘리가 없습니다.
하물며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라면 오히려 그런 보증 격차를 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할 것입니다.
게다가 고가 시계 브랜드를 차는 사람이라면,
고소득일 확률이 높고 요새 같은 글로벌 시대에 전세계를 누리면서 일을 할 것입니다.
당연히 유럽 내라면 이번 주는 독일, 다음 주는 영국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국에 프로젝트차 방문한 프랑스인이 자신이 찬 오메가 시계를 서비스 받으러갔더니
"우리나라 정식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라는 답을 듣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실제로 시계 업계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해서, 본사가
'한국인들은 어차피 한국에서만 사는 사람들이니 한국만 월드워런티에서 제외하자'
고 정했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계약서에 따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외 케이스 - 노모스
조금은 다른 노모스의 사례
우리나라에서 노모스는 해외 제품의 워런티 적용이 불가능합니다. 공식수입사가 병행제품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고 대대적으로 표기해두었습니다.
본사에 메일을 보내서 확인하는 법도 있지만, 일단 제조사도 "월드워런티"를 명시적으로 써놓지는 않았습니다.
Here’s what’s usually in the small print:
NOMOS Glashütte/SA Roland Schwertner KG (short: NOMOS) guarantees every person who has purchased a wristwatch manufactured by NOMOS from an authorized NOMOS dealer (the Customer) or the NOMOS Store (http://www.nomos-glashuette.com) that this watch will be free from defects in material or workmanship for two years from date of purchase subject to the following conditions.
I. Warranty claims
Anyone wishing to avail themselves of this warranty must give the watch to the dealer from whom they bought it, including the original invoice and a completed warranty book. After consultation with NOMOS, the watch can also be sent directly to NOMOS Glashütte at the following address, with the completed shipping form enclosed:
"노모스(제조사)는 공식 딜러 및 노모스 온라인 스토어에서 산 사람에 대해서 보증을 제공합니다."
여기까지는 문제 없습니다. 병행 제품이건 직수입 제품이건 공식 딜러로부터 판매된 제품이고 그 증명은 보증서의 스탬프로 확인합니다.
문제는 보증 청구 부분의 밑줄 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다른 브랜드랑 다릅니다. "제품을 구매했던 딜러"를 통해 접수하라고 나와있습니다. 노모스 국내 공식 수입사가 A/S를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저것입니다. (실제로 저 문구를 근거로 거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노모스가 제시한 워런티 규정에는 너가 구매했던 딜러에게 접수하라고 되어 있다."
고 말하면 거부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표기해두면 소비자들도 워런티가 안 된다고 납득할 수 있는 명시적인 이유가 됩니다. 조금 큰 브랜드는 "구매했던 딜러" 라는 표현 대신 "어떤 공식 딜러에게 가도 접수가 가능하다"는 표현으로 되어있습니다.
노모스의 대안
그래서 노모스는 뒤에 또 다른 단서를 달아놨습니다. 우리에게 직접 보내도 된다는 표현입니다.
노모스는 아직 규모가 크지 않고 인하우스 브랜드이다보니 해외의 수입사들과 계약을 할 때 서비스센터 운영까지는 항목에 넣지 않은 듯 합니다.
독립 브랜드고 서비스 센터를 공유할 수도 없으니 월드워런티까지는 제공할 여력이 없어보입니다.
그래서 공식 수입사에게 "부품은 우리가 보내줄테니 일단 너네들이 판 것은 너네가 수리하고 나머지는 우리에게 보내게끔 하자" 고 한 듯 합니다.
또 브랜드의 파워가 크지 않은 초창기에는 수입사를 철저히 보호해서 지원할 필요도 있습니다.
초창기에 수입해서 열심히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결국 공식수입사니까요.
결론적으로 노모스는 월드워런티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근거가 무엇이 됐든 노모스 공식 수입사도 병행 제품에 대해 워런티 제공이 불가하다는 방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워치라운지에서 이 부분에서 다른 대안을 마련중입니다. 다들 만족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될 것처럼 해놓고 안 되는 것이 문제일 뿐
위 사례처럼 월드워런티가 아닌 브랜드도 있고 월드워런티여도 수입사가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어도 럭셔리 시계브랜드에서는
- 제조사 - 월드워런티 제공 / 수입사 - 월드워런티 불가 + 해당 내용 표기 : 문제 없음, 하지만 실제로 안 일어남
- 제조사 - 월드워런티 제공 / 수입사 - 월드워런티 불가 + 해당 내용 미표기 : 한국의 현실
- 제조사 - 월드워런티 미제공 / 수입사 - 월드워런티 불가 + 해당 내용 표기 : 문제 전혀 없음 (노모스)
이렇게 유형이 정리됩니다. 소비자가 받고 있는 피해는 두 번째 케이스의 한국의 현실입니다.
서비스 제공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은 첫 번째 케이스입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고 다른 업계에는 만연한 일이나 럭셔리 시계 시장에서는 없는 일입니다.
"웹사이트보니까 월드워런티될 것 같아서 구매했더니 막상 한국에서는 안 되네?"
이게 문제입니다.
태그호이어 CEO에게 직접 회신을 받다
이제 태그호이어가 직접 진출하기도 했으니 이제와서 말을 합니다. 물론 지금은 이때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혜택이 좋아진 것은 정당한 소비자 권리를 끊임없이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월드워런티 문제에 대해서 블로그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는 상황이 훨씬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샘플 메일 양식 만들어놓고 소비자분들한테 보내준 적도 있습니다. 혹은 대신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여러가지 핑계로 서비스를 안 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스위스 본사에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당시 CEO인 장 클로드 비버한테 직접 답이 왔습니다.

TAG Heuer의 CEO이자 LVMH 워치 디비전의 대표로서,
한국의 일부 리테일러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받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것은 단순한 오해이기를 바랍니다.
저희는 그런 지침을 어느 누구에게도 내린 적이 없습니다.
TAG Heuer 고객이라면, 어디에서 시계를 구매했든지 간에 국제 보증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합니다.
시계의 케이스 번호와 고객님의 주소를 저에게 보내주신다면,보상으로 제가 직접 쓴 손글씨로 된 보증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이 보증은 2020년 말까지 연장된 보증서입니다.
TAG Heuer 시계를 착용하시며
행복과 성공이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장 클로드 비버
2015년에 2020년 말까지 보증을 연장해준 태그호이어 CEO의 친필 보증서를 보내주겠다는 내용입니다.
조치를 취하겠다는 메일까지 같이 왔으니 당연히 한국에 내용이 전달이 됐겠죠.
한국에서 연락은 왔었지만 딱히 대응은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인지 특정되면 안 되니 모두 가명으로 진행했습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제조사의 응대는 저렇습니다.
"어디서 샀든, 우리 고객이면 어디서든 책임진다" 는 철학이 담겨있는데
각 나라의 공식수입사가 제조사와의 계약을 근거로 월드워런티를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식수입사를 "제품은 수입했지만 브랜드 철학은 수입하지 않은 곳"으로 매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론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우리나라 럭셔리 시계 브랜드 중 월드워런티를 제공한다고 써있는 브랜드는 전부 월드워런티가 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월드워런티여도 거절할 수 있다?
“시계 업계의 월드워런티”에 대해서 “제조사-수입사 간 계약에 따라 거절할 수 있다” 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디스트리뷰터, 총판, 수입사, 뭐가 됐든)
이 주장은 형식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다른 업계에서는 그렇게 운영되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계약에 따라 보증이 제한되는 ‘정상적인’ 사례들
대표적으로 패션, 전자제품, 음향기기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나이키, 아디다스, 등은 해외 구매한 제품에 대해서는 A/S불가 혹은 조건부 유상 가능.
월드워런티를 제조사가 내세우는 브랜드도 국내 유통사가 서비스 거절하는 경우 많음.
이런 정책은 제조사와 수입사 간 계약에 따라 달라짐.
즉, “계약서에 따라 월드워런티 여부는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전혀 틀린 말은 아니고 업계에 따라 정당하게 적용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혹은 애초에 '제한된 월드워런티'로 명시되어 있는 경우
가전제품에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소니TV를 미국에서 직구해서 쓰고 있는데 미국 전자제품은 110V를 씁니다. 220V만 쓰는 한국에서 전압기준, 주파수가 다른 외국 제품까지 워런티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겠죠. 한국 서비스센터에서 외국 제품에 사용할 수 있는 부품을 준비하고 테크니션을 항상 상주해야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런 경우 제품에 소개된 보증 규정에는 이런 내용이 당연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월드워런티도 수입사가 거부할 수 있다
월드워런티라고 해도, 계약 구조상 유통사가 서비스 제공을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실제로 제조사-수입사 간 계약서에 “비공식 유통 제품에 대한 책임은 없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면, 수입사 입장에서 정당한 거절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제품에는 “월드워런티” 이란 문구가 포함돼 있고,
소비자는 브랜드 웹사이트나 매뉴얼, 보증서를 통해 동일한 서비스를 기대하고 있는데,
정작 서비스는 국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면?
이런 차이가 있다면, 그건 명확히 고지돼야 하고, 제품 또는 판매처에서 표기해야 합니다. (전자제품이나 다른 곳에서 이미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병행수입 제품 AS불가’ 같은 표기들)
만약 그걸 고지하지 않고 소비자가 오인하도록 방치했다면, 이는 소비자 보호법상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제조사와 수입사 간의 계약 내용을 당연히 외부자인 소비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소비자는 보증 규정에 대해서 웹사이트나 매뉴얼 등을 보고 확인을 합니다. 그런데 별도로 “한국에서는 별도의 규정이 적용된다" 는 언급이 있지 않으면 소비자는 기재된 월드워런티를 당연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월드워런티니까 서비스를 제공 해야 된다, 말아야 된다” 가 아니라 “소비자가 알 수 있었냐 없었냐” 입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시계 브랜드는?
대부분의 시계 브랜드는 "월드워런티" 를 제품과 함께 제공합니다. 이건 수입사가 아닌 제조사(브랜드 본사)가 소비자에게 직접 제공하는 보증 서비스입니다.
예를 들어 오메가, 태그호이어 등은 보증서 혹은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든 공식 서비스 센터에서 동일한 워런티 제공” 을 명시합니다.
한국에서도 이 브랜드들의 서비스 센터는 보통 브랜드 본사에서 직접 지정한 공식 센터이며,
수입사가 임의로 운영하는 독립 서비스 센터가 아닙니다.
즉, "제조사가 우리 브랜드의 서비스 센터는 여기에 있으니 여기서 월드워런티를 받으면 된다"
고 제조사가 직접 알려주는 것입니다.
즉, "제조사가 지정한 서비스 센터에서 서비스 받으라" 는 것은 제조사가 제품을 팔면서 제품에 붙어있는 권리이지,
수입사가 제품 외에 별도로 판매하는 권리가 아닙니다.
월드워런티의 본질은 ‘제조사의 약속’
그렇다면 제조사는 왜 월드워런티를 제공할까요?
간단합니다. 자신의 제품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브랜드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제품은 세계 어디서든 동일한 기준으로 관리받을 수 있다.”
“품질에 자신 있으니, 어떤 나라에서든 동일하게 책임지겠다.”
이건 단순한 A/S 범위가 아니라, 브랜드가 자사의 철학과 품질을 세계에 공통적으로 전달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따라서 수입사가 자신이 판매한 제품이 아니란 이유로 워런티를 거부하는 것은
월드워런티의 본질적 취지와 어긋나는 일 입니다.
대부분의 럭셔리 시계 브랜드는 월드워런티를 제공한다.
맨 위에서 언급했듯이 월드워런티여도 수입사가 계약상 거부할 수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실제로 이런 회사는 다른 업종에는 많습니다.
음향기기, 전자제품, 기타 등등. 하지만 모든 수입사는 그 내용을 명시합니다.
시계 브랜드는? 국내수입사에서 명시적으로 안 된다는 표현을 하고 있는 브랜드는 거의 없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판매하는 럭셔리 시계 브랜드가 "월드워런티"를 적어놓고 "한국은 예외" 라고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브랜드 파워가 있는 제조사가 자신들이 정한 보증 정책을 각국 수입사에게 요구합니다. 그게 브랜드 이미지와 소비자 신뢰를 유지하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본사가 진짜 허용했을까?
그런데 브랜드 웹사이트에는 월드워런티가 가능하다고 써있고, 한국 수입사만 혼자 ‘직구제품, 병행제품은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고 해서,
브랜드 본사에서 그걸 진짜 허용했을까? 확인하는 법은 쉽습니다. 스위스 본사 CS에 메일 한 줄 써서 보내면 끝입니다.
그러면 대부분 2~3일 내로 회신이 오며 조치됩니다.
“This product was purchased overseas. Can I receive warranty service in Korea?”
문제는…
영어로 메일 쓰기 귀찮고, 어디로 보낼지도 찾아야되고 번거로우니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비스 센터는 ‘기본적으로 안 해주는 것’을 전제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고객이 뭔가 잘 알고 따지기 시작하면, 또 잘 해줍니다. 그게 현실이고 관행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지고 소비자들도 똑똑해져서 브랜드에서도 별 소리 없이 다 해줍니다.
그것은 소비자들이 똑똑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못 받던 당연히 받아야할 권리를 받은 것 뿐입니다.
오래된 익숙함이 당연한 것으로 착각
한국은 삼면이 바다고, 유일한 언어를 쓰며 해외 직구가 자유로워진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구 제품, 병행제품은 A/S 안 돼”가 당연한 인식으로 굳어져 소비자들조차 그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월드워런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개별 국가 단위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전세계를 하나의 단위로 이해해야 합니다.
조금 글로벌하게 생각해보자.
우리가 유럽 사람이라고 생각해보겠습니다.
프랑스 수입유통사가 “영국에서 산 건 A/S 안 해줘요”라고 하면…제조사 본사에서 그걸 그냥 둘리가 없습니다.
하물며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라면 오히려 그런 보증 격차를 더 심각한 문제로 인식할 것입니다.
게다가 고가 시계 브랜드를 차는 사람이라면,
고소득일 확률이 높고 요새 같은 글로벌 시대에 전세계를 누리면서 일을 할 것입니다.
당연히 유럽 내라면 이번 주는 독일, 다음 주는 영국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한국에 프로젝트차 방문한 프랑스인이 자신이 찬 오메가 시계를 서비스 받으러갔더니
"우리나라 정식 제품이 아니라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라는 답을 듣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실제로 시계 업계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해서, 본사가
'한국인들은 어차피 한국에서만 사는 사람들이니 한국만 월드워런티에서 제외하자'
고 정했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계약서에 따라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외 케이스 - 노모스
조금은 다른 노모스의 사례
우리나라에서 노모스는 해외 제품의 워런티 적용이 불가능합니다. 공식수입사가 병행제품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고 대대적으로 표기해두었습니다.
본사에 메일을 보내서 확인하는 법도 있지만, 일단 제조사도 "월드워런티"를 명시적으로 써놓지는 않았습니다.
"노모스(제조사)는 공식 딜러 및 노모스 온라인 스토어에서 산 사람에 대해서 보증을 제공합니다."
여기까지는 문제 없습니다. 병행 제품이건 직수입 제품이건 공식 딜러로부터 판매된 제품이고 그 증명은 보증서의 스탬프로 확인합니다.
문제는 보증 청구 부분의 밑줄 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이 다른 브랜드랑 다릅니다. "제품을 구매했던 딜러"를 통해 접수하라고 나와있습니다. 노모스 국내 공식 수입사가 A/S를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저것입니다. (실제로 저 문구를 근거로 거부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노모스가 제시한 워런티 규정에는 너가 구매했던 딜러에게 접수하라고 되어 있다."
고 말하면 거부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표기해두면 소비자들도 워런티가 안 된다고 납득할 수 있는 명시적인 이유가 됩니다. 조금 큰 브랜드는 "구매했던 딜러" 라는 표현 대신 "어떤 공식 딜러에게 가도 접수가 가능하다"는 표현으로 되어있습니다.
노모스의 대안
그래서 노모스는 뒤에 또 다른 단서를 달아놨습니다. 우리에게 직접 보내도 된다는 표현입니다.
노모스는 아직 규모가 크지 않고 인하우스 브랜드이다보니 해외의 수입사들과 계약을 할 때 서비스센터 운영까지는 항목에 넣지 않은 듯 합니다.
독립 브랜드고 서비스 센터를 공유할 수도 없으니 월드워런티까지는 제공할 여력이 없어보입니다.
그래서 공식 수입사에게 "부품은 우리가 보내줄테니 일단 너네들이 판 것은 너네가 수리하고 나머지는 우리에게 보내게끔 하자" 고 한 듯 합니다.
또 브랜드의 파워가 크지 않은 초창기에는 수입사를 철저히 보호해서 지원할 필요도 있습니다.
초창기에 수입해서 열심히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결국 공식수입사니까요.
결론적으로 노모스는 월드워런티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근거가 무엇이 됐든 노모스 공식 수입사도 병행 제품에 대해 워런티 제공이 불가하다는 방침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워치라운지에서 이 부분에서 다른 대안을 마련중입니다. 다들 만족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될 것처럼 해놓고 안 되는 것이 문제일 뿐
위 사례처럼 월드워런티가 아닌 브랜드도 있고 월드워런티여도 수입사가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적어도 럭셔리 시계브랜드에서는
이렇게 유형이 정리됩니다. 소비자가 받고 있는 피해는 두 번째 케이스의 한국의 현실입니다.
서비스 제공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비판은 첫 번째 케이스입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고 다른 업계에는 만연한 일이나 럭셔리 시계 시장에서는 없는 일입니다.
"웹사이트보니까 월드워런티될 것 같아서 구매했더니 막상 한국에서는 안 되네?"
이게 문제입니다.
태그호이어 CEO에게 직접 회신을 받다
이제 태그호이어가 직접 진출하기도 했으니 이제와서 말을 합니다. 물론 지금은 이때보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혜택이 좋아진 것은 정당한 소비자 권리를 끊임없이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월드워런티 문제에 대해서 블로그를 통해 문제를 제기했을 때는 상황이 훨씬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샘플 메일 양식 만들어놓고 소비자분들한테 보내준 적도 있습니다. 혹은 대신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여러가지 핑계로 서비스를 안 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스위스 본사에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당시 CEO인 장 클로드 비버한테 직접 답이 왔습니다.
2015년에 2020년 말까지 보증을 연장해준 태그호이어 CEO의 친필 보증서를 보내주겠다는 내용입니다.
조치를 취하겠다는 메일까지 같이 왔으니 당연히 한국에 내용이 전달이 됐겠죠.
한국에서 연락은 왔었지만 딱히 대응은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인지 특정되면 안 되니 모두 가명으로 진행했습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제조사의 응대는 저렇습니다.
"어디서 샀든, 우리 고객이면 어디서든 책임진다" 는 철학이 담겨있는데
각 나라의 공식수입사가 제조사와의 계약을 근거로 월드워런티를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식수입사를 "제품은 수입했지만 브랜드 철학은 수입하지 않은 곳"으로 매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론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우리나라 럭셔리 시계 브랜드 중 월드워런티를 제공한다고 써있는 브랜드는 전부 월드워런티가 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